Shoe drop 첫날 찾아간 타운십 안의 고아원의 아이들.
사진작가 에스더가 찍어준 사진인데, 나는 이 사진이 참 마음에 든다.
오래 전부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살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 앞에 섰을때 그들이 병에 걸렸거나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두려워하면 어떻하나. 막상 그들 앞에 섰을때 그들을 돕고 싶은 연민이 생기지 않으면 어찌하나. 막상 그 순간에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지면 어떻게 하나. 참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스무살이 되는 해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내가 부르던 삶의 노래, 희망의 노래처럼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었고, 한비야 씨처럼 세계를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를 꿈꾸기도 했고, 언젠가 한비야 씨가 월드비전 구호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분의 삶이 참으로 부럽기만 했다.
나이 서른.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나의 28번째 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서른이 되면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꺼야'라고 친구에게 읊조리던 것이 나이 스물여섯 때였다. 드디어 나이 서른. 스스로 선언한 그 순간이 다가오자 나의 심장은 점점 위축되고 걱정으로 두근거리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슈드랍의 첫 날인 11월 11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Shoe drop에 참가한 여러나라 사람들과의 첫 저녁식사 시간에 나를 소개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오늘이 정말 다시 태어나는 날이구나."라고.
다음 날, 우리는 타운십의 아이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맞닥뜨리게된 것은 기쁨도 희열도 성취감도 연민도 동정심, 그 무엇도 아니었다.
오로지 이 아이들이 바로 현실이며, 여기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해지는 것은 나라는 것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인생상담을 하는 친구들에게 이 말을 꼭 한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싶다면 조용히 자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들어보라고."
분명히 오래 전 언제부턴가 당신은 알고 있다. 핑계와 변명 그리고 하루하루의 유희와 쾌락으로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진심으로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여전히, 거창한 세계평화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알게 된 것 같다.
내 안의 선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것. 하루살이가 급하고 버겨운 서울의 우리와 흙밭 위를 뛰노는 그 아이들의 하루를 이어주는 것. 그 멀기만 한 간격을 메워가는 것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품 안에 안을 때 몸 구석구석 퍼지던 그 행복한 생명의 기운을 잊지 않는 것이다.
I am a happy man.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Dee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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